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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상처를 보듬어주는 뮤지션 - 심규선

생각의 근육 2018. 12. 21. 03:55

사실 심규선의 노래를 처음 듣고 반하지 않았다. 에피톤 프로젝트를 좋아하던 터라 그의 앨범에 피처링을 했을 때부터 그녀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녀의 보컬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서 그녀의 음악을 찾아 듣지는 않았다. 간간이 그녀의 솔로 앨범 노래들도 들은 기회는 있었지만, 역시 내 취향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최근 다시 듣게 된 그녀의 노래에 끌려, 그녀의 음악을 찾아 듣고 있다.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음악 취향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의 음악에 반해서, 듣고 또 듣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가사를 귀 기울여 들은 후인 것 같다. 힘 빼고 부르는 자연스러운 보컬을 좋아하는 나인데 이런 드라마틱 한 보컬에 빠진 건, 김윤아 이후로 오랜만이다.

 

그녀의 다양한 감정 표현이 좋다. 우선 그녀의 가사는 독보적이다. 책을 좋아하는 그녀답게 가사를 쓰는 솜씨가 무척 뛰어나다. 유려한 문체의 가사에 그녀의 한 서린 목소리가 더해지면 웅장한 오페라가 된다.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런 가사를 쓰고, 이런 곡을 만들고, 이런 목소리로 노래를 할까? 어떻게 마음에 울림을 주는 가수가 되었을까? 그녀가 걸어온 인생까지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녀에 대해 여러 글을 읽다가 어릴 때 머리를 여는 대수술을 한 것을 알게 된다. 그런 큰 고통을 겪지 않았다면, 심규선의 노래에 이런 깊이가 느껴지진 않았으리..

 

그녀가 오래된 나무 같다고 생각했다. 바람에 맞서 싸우고, 눈보라도 이겨내고, 폭풍우에도 견뎌내는, 수년간 한자리에서 자기 자리를 지켜낸 나무.. 봄에는 따뜻한 햇살을 받지만 여름의 무더위, 가을의 쓸쓸함, 겨울의 한파를 모두 겪어내고

강인해진 한 그루의 나무, 그녀는 내게 오래된 나무이며, 그녀의 음악은 폭풍이자 햇살이자 바람이었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고, 절망하지만 그래도 버텨내는 우리의 삶을 그녀는 노래를 통해 온전히 이해해주고 위로한다.

슬픔, 행복, 절망, 사랑, 이별.. 그 모든 것은 그녀가 자신을 불태우고 깎아가면서 만들어 낸 작품이리.. 그래서 더 진솔하고, 그래서 듣는 이의 마음을 건드린다. 작정하고 관객을 울게 하는 영화 말고, 담담한 이야기 속에 깊이 있는 울림을 주는 영화처럼 그녀의 노래가 그렇다. 마음 깊이 숨겨놓은 상처를 기어이 끄집어내어, 그 상처를 들여다보게 하는 음악 그 상처를 보듬어주고, 토닥여주는 노래 한순간 가슴이 무너지게 하고 그 무너진 가슴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을 가진 노래

 

"나의 작은 소년에게 드러내 너의 상처를, 바람에 닿고 흉이 남아도 내 어린 소년에게 드러난 너의 흉터를 다독일 기회 주지 않겠니" <소년에게> 가사 중

 

닥친 내일이 어깨를 짓눌러 멍든 어제가 발목을 잡아도 모든 이유를 이해할 때까지 너의 존재 위에 너의 현재 위에 무언가 무언가를 너의 존재 위에 무언가를 두지 마"  <너의 존재 위에> 가사 중

 

늦은 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내 안의 슬픔과 행복과 절망까지 한순간 파도처럼 밀려간다. 기꺼이 상처를 끄집어내어 들여다본다. 그녀가 원하는 음악이 그럴것이리, 누군가의 인생에 진정한 위로가 되는 음악.. 듣는 이에게 치유를 선물하는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하면서, 매 순간 힘들고 고통스러울 그녀에게 기꺼이 그래주어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당신과 동시대에 살며 당신의 노래로 위로받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신의 노래를 온전히 이해하고, 노래를 통해 깨지고 부서지며, 다시 힘을 내고 일어나는 것뿐이라고.. 뒤늦게나마 훌륭한 뮤지션을 알아봤고, 앞으로 그녀의 열혈팬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