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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읽으면 더 좋아지는 책

요즘 푹 빠져있는 작가 장강명 작가의 책이다. 두 번째 읽었더니 더 좋다. 살인, 학교폭력, 왕따 등의 무거운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은 서정적인 분위기와 따뜻함까지 느끼게 한다.

 

남자 이야기

남자는 얼떨결에 자신을 괴롭히던 일진 영훈을 살해한다. 정당방위로 인정되어 교도소에서 9년을 살고 사회로 나온다.

 

아주머니 이야기

아주머니는 아들이 살해당한 후 고통스러운 삶을 산다. 아들이 죽었다는 슬픔도 감당할 수 없는데, 죽은 아들이 학교폭력의 주범자라고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이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들은 일진이나 학교폭력 주범자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 거짓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아들을 살해한 남자를 쫓아다니며 괴롭힌다. 남자에게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라며, 다정한 척하기도 하지만 남자가 사는 동네에 살인자라고 소문을 내는 등 남자의 앞길을 계속해서 방해한다.

 

여자 이야기

여자는 고등학교 때 남자와 동창이었다. 문학과 영화 이야기를 하며 가까워진 사이다. 그리고 성인이 된 그녀는 출판사 편집자가 된다. 그녀가 일하는 출판사에 문학상 공모전 응모 작품 중 [우주알 이야기]를 읽고 고등학교 때 그 남자가 쓴 소설임을 직감한다. 그 계기로 재회하여 남자와 연인이 된다.


소설은 우주알을 통해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미한다. 남자는 지구에서 내려온 우주알이 몸속에 들어와 미래를 볼 수 있다. 자신이 미래에 아주머니에게 살해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운명을 바꾸려 하지 않고, 여자를 다시 만나기 위해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로 한다. 그리고 자신이 죽은 후에도 살아갈 여자와 아주머니를 위해 아주머니에게는 아들은 학교폭력 주범자가 아니었다는 거짓 영상을, 여자에게는 거액의 보험금을 남긴다.

 

소설은 남자, 여자, 아주머니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교차된다. 또한 이야기는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오간다. 작가는 이 부분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시간 순차적으로 삶을 살아가지만, 노년의 삶이나 결말에 큰 의미를 둔다. 그러나 삶의 한순간이라도 온전히 행복했다면, 마지막이 비극일지라도 인생은 가치 있는 게 아닌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고 장강명에 푹 빠져서 작가의 다른 책들을 읽고 있다. 다른 책들을 읽어보면 장강명이 글의 스펙트럼이 꽤 넓은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믐]을 읽은 후 두 번째로 [댓글부대]를 읽은 나로서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서정적인 글을 썼던 사람이, 기자라는 전직에 맞게 르포적인 글을 짜임새 있게 잘 담아낸다. 장강명 작가의 앞으로의 행보도 무척 기대가 된다.

 

등장인물

남자

문학을 좋아하고 글솜씨가 좋다. 고등학교 때 자신을 괴롭히던 같은 반 이영훈을 얼떨결에 살해한다. 지구에서 내려온 우주알이 몸속에 들어와 미래를 볼 수 있다.

 

여자

출판사 편집자며, 남자와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이보람이란 이름이 싫어서 개명한다. 아빠의 바람, 엄마의 편애 등 가정에서의 상처가 많다.

 

이영훈

고등학교 때 일진, 학교폭력을 주도한 아이로 같은 반 남자애에게 살인을 당한다.

 

아주머니

영훈이 엄마로 왼쪽 몸에 마비 증상이 있다. 아들이 죽은 지 1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들이 학교폭력 가해자가 아님을 밝히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남자를 쫓아다니며 집요하게 괴롭힌다.

 

인상 깊은 구절

오직 인간만이, 시간을 한쪽 방향으로 체험하지. 그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고. 아주 드라마틱 해. 모든 사건을 한쪽 방향으로, 단 한 번씩만 경험하니까. p.11

 

그럼 보통 사람들의 인생은 어떤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으로 보는 거랑 비슷한 건가? 여자가 다시 물었다. 앞으로 어떤 장면이 나올지도 모르고, 속도를 조절할 수도 없고, 중간에 멈출 수도 없는? p.17

 

내가 아까 우리 중에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죠? 그런데 현재를 제대로 보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사람이 과거에 사로잡혀 있거나 미래에 홀려 있으면 현재를 제대로 보지 못해요. p.54

 

우주 알이 몸에 들어오면 이런 점이 참 안 좋아. 왜냐하면 어떤 만남이 어떻게 끝날지 뻔히 보이거든. 그런데 어떤 관계의 의미가 그 끝에 달려있는 거라면, 안 좋게 끝날 관계는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그 끝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과정이 아름답고 행복하다 하더라도? p.87

 

과거와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만 보는 사람이 더 유리할 때도 있어. 여자가 말했다. 과거를 잊을 수 있으니까. 과거를 잊을 수 있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 그러니까, 내가 널 지켜줄게. p.127

 

그믐에는 달과 지구 사이의 시공간연속체가 뒤틀려. 내가 우주 알일 때에는 그 뒤틀림을 이용해서 지구에 왔어. 뒤틀린 시공간터널을 타고 내리는 달빛에는 이상한 힘이 생겨. 잘라진 걸 붙이고, 끊어진 걸 잇게 되지. 남자가 말했다. 그리고 고통을 멈추게 해 줘. p.140

 

나한테 남은 문제는 이거였어. 네가 이 마지막 때문에 우리 관계를 온통 불행했던 것으로, 비극적인 것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보통의 시간 순서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서사와 결말을 중시하잖아. 어린 시절 행복하고 노년에 불행한 것보다 그 반대를 선호하고, 수십 년을 기다린 아버지와 딸이 마지막에 잠시라도 꼭 만나야 하고. p.144

 

지금까지 내가 해온 모든 거짓말들은 다 잊더라도 이 말만은 기억해 줬으면 해. 널 만나서 정말 기뻤어. 너와의 시간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들이었어. 난 그걸 절대로 후회하지 않아. 고마워. 진심으로. p.148

 

훨훨 날아가고 싶어. 나의 시간을 살고 싶어. 자유로워지고 싶어. p.161